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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박항서는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며 큰 성공을 거둔 인물입니다. 선수 시절에는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전향해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의 코치를 맡아 4강 신화를 함께 했습니다.
2017년에는 베트남 국가대표팀과 U-23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해, 2018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 2018 AFF 스즈키컵 우승, 2019 아시안컵 8강 진출 등의 성과를 이루며 베트남 축구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습니다.
특유의 리더십과 따뜻한 인간미로 베트남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베트남에서 "쏘장님(박항서 감독을 존경하는 애칭)"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2023년 베트남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한-베 양국의 스포츠 및 사회 교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박항서 감독입니다.
이에 박항서 감독 나이 프로필 연봉 아내 아들 근황 등 관심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박항서 감독에 대해 알려진 정보를 모아 정리해 보았습니다.
박항서 감독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키 혈액형 종교 학력
박항서 감독은 1957년 10월 1일생으로 올해 나이 66세입니다. 박항서 감독 고향은 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이며, 가족으로는 아버지와 아내(부인) 최상아와 아들 박찬성(1986년생)이 있습니다.
박항서 감독은 키가 166cm라고 하는데요, 실제 키는 나이가 들면서 더 작아졌는지 164cm인 이수근보다 조금 더 작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박항서 감독 종교는 개신교(성결교회)이며, 학력은 생초초등학교, 생초둥학교, 경신고등학교, 한양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항서 감독 과거 선수 이력
박항서 감독은 1977년 제19회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에 출전할 20세 이하 청소년 국가대표팀에 선발되며 축구 인생의 첫 발을 내디뎠고, 이듬해인 1978년에는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에 출전한 대표팀의 주장으로 활약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청소년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그는 이후 1979년 당시 국가대표 B팀에 해당하는 ‘충무팀’에 발탁되었고, 1981년에는 1진 국가대표 ‘화랑팀’에 선발되어 한일 정기전에 출전하는 등 국가대표급 선수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박항서는 실업 축구팀인 제일은행 축구단에서 성인 무대 경력을 시작했으며, 1984년에는 럭키금성 황소(현 FC서울)의 창단 멤버로 입단했습니다.
이 팀에서 그는 1985년 K리그 우승과 1986년 준우승에 기여하며 팀의 중심 선수로 활약했지만, 1988시즌을 끝으로 30세의 나이에 비교적 이른 시기에 선수 은퇴를 선언하게 됩니다.
은퇴 배경에 대해 박항서 감독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언급하며, “그때는 결혼을 하거나 30세가 넘으면 은퇴를 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주전 선수로 계속 뛰었으면 은퇴를 미뤘겠지만, 이제는 물러나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다”며 조용히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게 된 이유를 덧붙였습니다.
박항서 감독 은퇴 이후 지도자 경력
박항서 감독은 선수 생활을 마친 이후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지도자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1996년까지 LG 치타스(현 FC서울)에서 코치로 활동하며 경험을 쌓았으며, 당시 감독의 사퇴로 인해 감독 대행을 맡기도 했습니다.
이후 1997년에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옮겨 2000년 2월까지 코치로 활동하며 K리그 현장에서 실전 감각을 이어갔습니다.
한편, 박 감독은 1994 미국 월드컵 당시에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트레이너로도 참여했습니다.
이후 허정무 감독이 물러난 뒤에는 수석코치로 승진하였고, 2000년 12월 한일 정기전에서는 감독 대행 자격으로 벤치를 지휘하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박항서는 히딩크 감독 체제의 수석코치로 발탁되어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4강 신화를 함께 만들어낸 주역 중 한 명이 됩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훈하게 됩니다.
이후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생애 처음으로 정식 감독직을 맡게 되었지만, 결과는 동메달에 그치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비판 여론 속에서 해임을 당하게 됩니다.
당시 성적에 대한 압박은 매우 컸고, 그는 이후 공황장애 진단을 받을 정도로 심리적 고통을 겪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약물치료를 병행하며 회복의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박항서는 이후 포항 스틸러스 코치를 거쳐 전남 드래곤즈에서는 기술고문을 맡았고, 2005년에는 고향 경남의 창단 구단인 경남 FC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됩니다. 그는 팀을 창단 첫 해부터 4위에 올려놓는 성과를 올렸지만, 구단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인해 결국 자진 사임하게 됩니다.
2007년 12월에는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으로 복귀하면서 공석이 된 자리를 대신해 전남 드래곤즈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다시 현장에 복귀했고, 2010년 11월까지 팀을 이끌었습니다.
이후에는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다, 2012년 상주 상무의 감독으로 선임되며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박 감독은 상무에서 팀을 재정비해 K리그 1부 리그 승격을 이뤄내는 성과를 거두었고, 계약 기간이 종료된 뒤 상주를 떠나게 됩니다.
그는 이후 고향 산청으로 돌아가 잠시 고등학생 유소년들을 지도하며 조용한 시기를 보냈고, 이어 내셔널리그 창원시청 축구단의 제2대 감독으로 부임합니다.
이 시기에는 내셔널선수권 우승이라는 값진 성과를 거두었지만, 여름 이적 시장에서의 전력 보강 실패로 순위가 급락하며 아쉬움을 남기게 됩니다.
이후 박항서 감독 인생에 전환점이 되는 제안이 들어오게 됩니다. 아내의 권유로 동남아 시장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스스로를 “지금은 무직이며 일을 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밝히며 에이전트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게 됩니다.
며칠 뒤, 베트남 축구협회로부터 국가대표팀 감독직 제안이 도착했고, 박 감독은 고민 끝에 이를 수락하게 됩니다. 당시 베트남은 외국인 감독들이 줄줄이 실패했던, 일명 ‘감독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자리였기에 걱정도 있었지만, 박항서 감독은 결국 도전을 선택하게 됩니다.
박항서 감독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박항서 감독은 2017년 10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과 U-23 대표팀의 겸임 감독으로 공식 취임하며 본격적인 베트남 축구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내에서 중위권 전력을 가진 팀으로 평가받았으나, 박 감독은 이러한 인식을 완전히 뒤바꿔 놓게 됩니다.
2018년 초, 박항서 감독은 AFC U-23 챔피언십에서 베트남 U-23 대표팀을 이끌고 결승 진출이라는 기적 같은 성과를 이루어냅니다. 약체로 평가받던 팀을 아시아 최강급으로 끌어올린 그의 리더십은 큰 화제를 모았고, 이때부터 그는 베트남 언론과 국민들로부터 ‘베트남의 히딩크’라는 애칭을 얻게 됩니다.
같은 해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는 베트남 축구 역사상 56년 만의 4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기록하며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고, 12월에는 AFF 스즈키컵(동남아시아 축구선수권)에서 베트남을 10년 만에 정상에 올려놓으며 2018년을 베트남 축구의 ‘황금기’로 만들었습니다.
박항서 감독의 도전은 2019년에도 이어졌습니다. AFC 아시안컵 8강 진출(12년 만), 킹스컵 준우승, 2020 도쿄올림픽 지역 예선 준비 등 굵직한 대회에서 성과를 내며 베트남을 명실상부한 동남아시아 최강국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박항서는 2019년 11월 베트남 축구협회와 3년 재계약을 체결하였으며, 바로 다음날 아세안 축구 연맹(ASEAN Football Federation)이 선정한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해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SEA Games)에서는 1959년 이후 무려 60년 만에 금메달을 안기며 다시 한 번 베트남 축구사를 새롭게 썼고, 이어지는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에서는 베트남 축구 역사상 첫 최종예선 진출이라는 전무후무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최종예선에서도 박 감독은 인상적인 기록을 이어갔습니다. 중국과의 B조 8차전에서 베트남의 첫 최종예선 승리를 이끌었으며, 일본 원정 경기에서는 1-1 무승부라는 이변에 가까운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2021년 SEA 게임(동남아 대회)에서는 전승 무실점 금메달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U-23 대표팀 감독으로서 마지막 대회를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이후 박항서 감독은 2022년 10월,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하며 베트남과의 5년간의 여정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마지막 공식 대회였던 2022 AFF 챔피언십(스즈키컵)에서도 베트남을 결승으로 이끌며, 인도네시아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으나 아쉽게도 태국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박 감독은 이 대회를 끝으로 2023년 1월 31일부로 감독직에서 물러나며 5년 3개월간의 위대한 여정을 마감했습니다.
박항서 감독 근황
박항서 감독은 2023년 1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같은해 10월 한국에서 열린 한국과 베트남의 친선경기에 앞서 베트남 선수들을 직접 격려하며 옛 제자들과의 인연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2024년 2월 베트남 3부 리그 소속인 박닌 FC의 고문으로 부임하여 유소년 축구 육성과 관련된 활동을 이어가는 등 베트남 축구의 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 베트남 현지에서도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2025년 4월, 박 감독은 대한축구협회(KFA)의 제55대 집행부 인선에서 부회장으로 공식 선임, '국가대표 지원 부회장' 직책을 맡아 전력강화위원회 및 기술발전위원회와 협력하며 국가대표팀의 전력 강화와 대외 협력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임에 대해 베트남축구협회는 공식 친서를 통해 축하의 뜻을 전하며, 박 감독의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이 아시아 축구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박항서 감독은 여러 특집 인터뷰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도 출연했으며, 베트남에서의 성공 스토리와 한-베 교류의 의미를 조명하는 방송에 초대 손님으로 등장한 적도 있습니다.
박항서 감독은 또한 대학이나 기업, 공공기관에서 ‘리더십’, ‘도전정신’, ‘조직 관리’ 등을 주제로 한 강연 활동도 병행하고 있고, 2023년 이후 국내 예능 프로그램에도 본격적으로 얼굴을 비추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KBS 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출연해 지도자로서의 리더십과 유쾌한 인간미를 동시에 보여주기도 했는데요, 최근에는 뭉쳐야 찬다2에 합류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박항서 감독 개인 수상 기록>
-1985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13년 K리그 올해의 감독상 수상
-2017년 내셔널축구선수권대회 최고 감독상 수상
-2019년 AFF 올해의 감독상 수상
-2002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 수훈
-2018년 베트남 3급 노동 훈장 수훈
-2018년 베트남 우호 훈장 수훈
-2020년 베트남 2급 노동 훈장 수훈
-2022년 대한민국 수교훈장 홍인장
박항서 감독 연봉 수입
박항서 감독은 2017년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처음에는 비교적 낮은 수준의 연봉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초기 계약 당시에는 매달 세후 약 2만 달러(한화 약 2,300만 원)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으며, 이는 당시 베트남 축구계에서 외국인 감독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대치에 가까운 금액이었습니다.
하지만 감독 부임 이후 베트남 축구 역사상 유례없는 성과를 잇따라 기록하며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박 감독은, 2019년 베트남 축구협회와 재계약을 체결하며 역대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게 됩니다.
정확한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베트남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연봉 약 96만 달러(한화 약 11억 1,00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당시 재계약 조건에 따르면, 박 감독은 세후 기준 월 6만 달러(약 6,940만 원)를 급여로 받았고, 여기에 개인 주택 제공, 차량, 항공비 등 각종 부대 혜택이 포함되어 실질적인 월 보수는 약 8만 달러(약 9,260만 원) 수준으로 추산되었습니다.
이는 같은 시기 태국 국가대표팀을 이끌던 니시노 아키라 감독의 연봉(약 94만 8,000달러)과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됐습니다.
다만, 박항서 감독의 연봉이 공개될 경우 한국과 베트남 양국에서 민감한 반응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베트남 축구협회 측에서는 구체적인 계약 조건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 역사상 최고 대우"라는 평가만이 공식적으로 언급되었습니다.
이후 2021년을 기준으로 한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박 감독은 재계약 이후에도 매달 약 5만 달러 수준의 급여를 수령하는 것으로 전해졌으며, 여전히 동남아 축구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연봉을 받는 감독 중 한 명으로 꼽혔습니다.
박항서 감독 결혼 아내(부인) 최상아 나이(차) 직업, 누구?
박항서 감독은 1987년 5월, 최상아 씨와 결혼식을 올리며 가정을 꾸렸습니다. 박 감독이 화려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는 동안 아내는 언제나 조용히 곁을 지키며 그를 든든히 응원해온 존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최상아 씨의 나이나 직업 등 개인적인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으며, 언론 노출도 거의 없는 편입니다.
특히 주목받는 부분은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 제안을 받고 고민하던 시기, 아내 최상아 씨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박 감독은 지도자로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국내에서의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아내는 그를 향해 “해외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 않았나.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라며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고, 박항서 감독은 이를 계기로 베트남행을 결심하게 됩니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상아 씨는 당시 60세를 맞이한 남편의 열정과 가능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도전을 강하게 응원했다고 전해졌습니다.
박항서 감독 역시 이후 인터뷰에서 이를 직접 언급하며, “아내가 동남아 진출을 제안했다. 한국에서는 하향길이었기 때문에, 도전해보자는 심정으로 베트남으로 떠났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아내의 조언과 격려는 단순한 가족의 조력이 아닌, 박 감독 인생의 전환점을 만든 결정적인 순간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항서 감독 아내 최상아 아들 근황
박항서 감독은 현재 슬하에 아들 박찬성 씨를 두고 있습니다. 아들 박찬성 씨는 현재 나이로 볼 때 30대 후반, 약 37세 전후로 추정되지만, 이름 외에는 구체적인 정보나 직업 등은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박항서 감독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아들을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방송에서의 발언 이후 “쓸데없는 얘기를 왜 하냐”며 아들에게 혼났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박항서 감독은 또한 다른 한 방송에서 아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박항서 감독 : "아들이 축구를 하고 싶다고 해서 일단 시켜보았다. 오늘 경기 뛰었냐고 물었더니, 안 뛰었다면서 감독이 자기를 비밀병기라고 하더라. 그걸 듣고 후보라는 걸 직감했다."
박항서 감독 : “나도 축구에 재능이 없고, 아내도 운동신경이 없다. 그런데 아들이 누구를 닮아서 잘하겠느냐. 아들은 그 고된 훈련을 버티지 못할 것을 알았다. 미지의 세계였다면 보내봤겠지만, 내가 너무 잘 아니까 더 못 보내겠더라"
결국 박항서 감독은 아들의 축구 지도자가 자신의 후배였던 인연을 통해 “그만두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이후 아들은 스스로 축구를 포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박 감독은 “어느 날 아들이 와서 ‘축구 안 한다’고 말하더라”고 회상하며, 그 결정을 존중했다고 합니다. 이어 박감독은 “지금은 아들이 오히려 야구를 더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박항서 감독 아내 최상아 씨에 대해
아내 최상아 씨는 베트남 감독직 제안을 망설이던 박 감독에게 동남아 진출을 적극 권유한 주인공으로, “이 기회가 마지막이 될 수 있다”며 등을 밀어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박항서 감독은 새로운 축구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는 결국 베트남 축구의 기적적인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박항서 감독의 어머니 고 백순정 여사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경남 사천시 축동면 출신인 백 여사는 2024년 2월 3일, 향년 102세로 별세하셨습니다. 경남의 명문 진주여고를 졸업한 신여성이자, 가족을 위해 헌신한 여장부로 회자되는 분입니다.
남편 고 박승록 선생은 경찰로 재직 중 한국전쟁 당시 밀양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공직을 이어가지 못했고, 이에 백 여사는 20대 후반부터 직접 약방, 식당, 소금 도매상 등 다양한 일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셨습니다.
자녀들을 서울로 유학 보내 대학 교육까지 마친 백 여사는 막내인 박항서를 국가대표 선수로, 이후에는 세계적인 지도자로 성장시킨 어머니로 산청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축동띠(축동댁)’, ‘여장부’로 불렸습니다.
2023년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나기 전, 베트남 정부는 그의 어머니 생신을 기념해 액자 표구 선물과 함께 박 감독을 주석궁으로 초청했습니다.
이에 박 감독은 “어머니 생신을 어떻게 아시고 그런 선물을 주셨는지 놀랐다”고 밝혀 한-베 양국 간의 깊은 정서적 교류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남기도 했습니다.
최근 뭉쳐야 찬다 시즌2에서 좋은 모습 보여주고 있는 박항서 감독인데요, 앞으로도 다양한 방송을 통해 활약 이어가는 모습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박항서 감독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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